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갈매기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 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비
이 비는 무적함대. 나는 그 사령관인 양 바다를 호령하여, 승리를 위하여 만전을 다한다.
실지로는 우산을 받치고 길을 가지마는, 옆가의 건물들이 군함으로 보이고, 제독은 외로이 세상을 감시한다.
가로수들이 마스트로 보이고, 그 잎잎들이 신호기이니, 천하만사가 하느님 섭리대로 나부낀다.
약속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톳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꽃빛
손바닥 펴 꽃빛아래 놓으니 꽃빛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몇일전 간 秘苑에서 본 그 꽃빛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열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한 가지 소원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드러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껏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 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편지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신부에게
온실에서 갖나온 꽃인양 첫걸음을 내디딘 신부여 처음 바라보는 빛에 눈이 부실 테지요. 세상은 눈부시게 밝은 빛이 있는가 하면 어두운 빛도 있답니다. 또한 기쁜 일도 있을 것이고 슬픈 일도 있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쓴맞이 더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은 괴로움만도 또한 아닙니다.
신부님 곁에는 함께 살아갈 용감하고 튼튼한 신랑이 있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고 양보하며는 더 큰 복을 받을 테지요. 신부여,
성실과 진실함이 함께 한다면 두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용기와 힘을 합쳐 보세요. 그러면 아름다운 꽃이 필 것이며 튼튼한 열매가 맻어질 것입니다.
고향 이야기
내 고향은 세 군데나 된다. 어릴 때 아홉 살까지 산 경남 창원군 진동면이 본 고향이고 둘째는 대학 2학년때까지 보낸 부산시이고 셋째는 도일(渡日)하여 살은 치바켄 타태야마시이다. 그러니 고향이 세군데나 된다.
본 고향인 진동면은 산수(山水)가 아름답고 당산(堂山)이 있는 수려한 곳이다. 바다에 접해 있어서 나는 일찍부터 해수욕을 했고 영 어릴때는 당산(堂山)밑 개울가에서 몸을 씻었었다.
제 2고향은 부산시 수정동인데 산중턱이라서 오르는데 힘이 들었다.
제3의 고향인 일본 타태야마시에서는 국민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살았는데
일본에서도 명소(名所)다. 후지산이 멀리 바라 보이고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요, 해군 비행장이 있어서 언제나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고 있었다.
공상(空想)
기어이 스며드는 것
절벽(絶壁)위에서 아슬한 그 절벽(絶壁)위에서
아! 저 화원(花園)입니다. 저 처녀(處女)입니다. - 붉고 푸르고 누른 내 마음의 마차(馬車)여 오늘은 또 어디메로 소리도 없이 나를 끌고 가는가.
바람에도 길이 있다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행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느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새소리
새는 언제나 명랑하고 즐겁다. 하늘밑이 새의 나라고, 어디서나 거리낌 없다. 자유롭고 기쁜 것이다.
즐거워서 내는 소리가 새소리이다. 그런데 그 소리를 울음소리일지 모른다고 어떤 시인이 했는데, 얼빠진 말이다.
새의 지저귐은 삶의 환희요 기쁨이다. 우리도 아무쪼록 새처럼 명랑하고 즐거워 하자!
즐거워서 내는 소리가 새소리이다. 그 소리를 괴로움으로 듣다니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놈이냐.
하늘 아래가 자유롭고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새는 아랫도리 인간을 불쌍히 보고 아리랑 아리랑 하고 부를지 모른다.
무명(無名)
뭐라고 나는 그때 말할 수 없이 저녁놀이 져가는 것이었다.
그 시간과 밤을 보면서 내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봄도 가고 어제도 오늘 이 순간에도 빨가니 타서 아, 스러지는 놀빛
저기 저 하늘을 깍아서 하루 빨리 내가 나의 무명(無名)을 적어야 할 까닭을
나는 알려고 한다. 나는 알려고 한다
아기비
부실부실 아기비 내린다. 술 한잔 마시는데, 우산 들고 가니
아기비라서 날이 좀 밝다.
비는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맞았겠지. 공(公)도 없고 사(私)도 없는 비라서 자연(自然)의 섭리의 이 고마움이여!
하늘의 천도(天桃)따라 오시는 비를 기쁨으로 모셔야 되리라. 지상(地上)에 물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것을.
새벽
새벽에 깨는 나 어슴프레는 오늘의 희망! 기다리다가 다섯시에 산으로 간다.
여기는 상계1동 산에 가면 계곡이 있고, 나는 물속에 잠긴다.
물은 아침엔 차다. 그래도 마다 않고 온몸을 적신다.
새벽은 차고 으스스 하지만 동쪽에서의 훤한 하늘빛 오늘은 시작되다.
나는 행복(幸福)합니다
나는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幸福)합니다. 아내가 돈을 버니까!
늙은이 오십세살이니 부지런한 게 싫어지고 그저 드러누워서 KBS 제1FM방송의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最高)의 즐거움이오. 그래서 행복(幸福).
텔레비젼의 희극(喜劇)을 보면 되려 화가 나니 무슨 지랑병(炳)이오?
세상은 그저 웃음이래야 하는데 나에겐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 어기겠어요?
행복은 충족입니다. 나 이상의 충족이 있을까요?
마음의 날개
내 육신(肉身)에는 날개가 없어도 내 마음에는 날개가 있다. 세계 어디 안가본 데가 없다. 텔레비전은 마음 여행의 길잡이가 되고 상상력(想像力)이 길을 인도한다. 북극(北極)에도 가 보고 남양(南洋)의 오지(奧地)에도 가보았다. 하여튼 내가 안 가본 곳이란 없다. 내 마음엔 날개가 있으니까.
흐름
바다도 흐르고 구름도 흐르고 사람도 흐르고 동물도 흐르고 흐르는 것이 너무 많다
새는 날고 지저귀는데 흐름의 세계를 흐르면서 보리라.
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위에서 아래로만 흐른다. 하나님! 하나님도 흐르시나요!
오월의 신록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두살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일을 즐겁게
모든 일을 이왕 할 바에야 아주 즐겁게 하자.
일하는데 괴로움을 느끼면 몸에도 나쁘고......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 일의 능률도 오르고 몸에도 아주 좋으니......
그러니 즐거운 마음과 건강한 생각으로 일을 합시다.
봄을 위하여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회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론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청녹색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산의 나무들은 녹색이고 하나님은 청녹색을 좋아하신는가 보다.
청녹색은 사람의 눈에 참으로 유익한 빛깔이다. 우리는 아껴야 하리.
이 세상은 유익한 빛깔로 채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다음
멀잖아 북악(北岳)에서 바람이 불고 눈을 날리며, 겨울이 온다.
그날, 눈오는 날에 하얗게 덮인 서울의 거리를 나는 봄이 그리워서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도 나에게는 언제나 이러한 '다음'이 있었다. 이 새벽, 이'다음' 이 절대(絶對)한 불가항력(不可抗力)을 나는 내 것이라 생각한다.
이윽고, 내일 나의 느린 걸음은 불보다도 더 뜨거운 것으로 변하여 나의 희망은 노도(怒濤)보다도 바다의 전부보다도 더 무거운 무게를 이 세계에 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다음'은 눈오는 날의 서울 거리는 나의 세계의 바다로 가는 길이다.
창에서 새
어느날 일요일이었는데 창에서 참새 한 마리 날아 들어왔다.
이런 부질없는 새가 어디 있을까? 세상을 살다보면 별일도 많다는데 참으로 희귀한 일이다.
한참 천장을 날다가 달아났는데 꼭 나와 같은 어리석은 새다. 사람이 사는 좁은 공간을 날다니.
갈대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기쁨
친구가 멀리서 와, 재미있는 이야길 하면 나는 킬킬 웃어제킨다.
그때 나는 기쁜 것이다. 기쁨이란 뭐냐? 라고요? 허나 난 웃을 뿐.
기쁨이 크면 웃을 따름. 꼬치꼬치 캐묻지 말아라. 그저 웃음으로 마음이 찬다.
아주 좋은 일이 있을 때 生色이 나고 활기가 나고 하늘마저 다정한 누님 같다.
새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