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가게 앞을 지나가다 꽃무늬 원피스에 마음이 끌려 걸음을 멈추었다. 파란색 바탕에 갖가지 색으로 작은 꽃이 무늬 져 있는 예쁜 옷이다. 그런데 꽃무늬가 아른거리는 그 아름다운 원피스는 왠지 아련한 아픔 같은 걸 느끼게 한다. 어린 날 내가 보았던 저고리 때문일까. 잔잔한 꽃무늬가 있는 옷만 보면 언제나 예쁘다는 생각보다 어느 부부의 슬픈 사랑이 먼저 떠오른다.어린 시절 내 고향 마을에는 나환자 부부가 살고 있었다. 아니 살고 있었던 게 아니라 어느 핸가 우리 마을로 흘러 들어와 방천(防川)둑 아래에 있는 빈집에서 살게 되었다. 마을 아이들은 문둥이 마누라가 아이를 가져 배가 앞산만 해졌다면서 구경을 가자고 했지만, 나는 무서워서 그 집 근처 에는 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어 가끔 둑 위에 서서 그 집 마당을 엿보았으나 한 번도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그 사람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시절 다른 나환자들처럼 집집을 돌며 구걸을 하러 다니지도 않았고, 그들끼리 떼를 지어 다니며 아이들 을 겁먹게 하지도 않았다. 가끔 그 부부는 마을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마주 치기라도 하면 수건으로 가린 얼굴을 숙이며 공손히 인사하는 모양이 많이 배운 사람 같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둑 집에 사는 아내가 아기를 낳았다는 소문 이 마을에 퍼졌다. 마을 아낙네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지난 장날엔 그 집 남편이 해산한 아내에게 줄 거라면서 예쁜 저고리를 하나 사가는 걸 봤다는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 집 아내는 건강한 사람이었다는데 왜 병든 남편과 사는지 모르겠다며 동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여태껏 남편에게 선물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자기 네는 문둥이 마누라보다 못한 팔자라고 푸념을 해대었다. 선물 받은 아내가 가진 작은 행복 뒤엔 세상 모두가 두려워하는 크나큰 불행이 웅크리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마을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이야기들을 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그 저고리 이야기가 잦아들 무렵, 마을에는 다시 둑 집 굴뚝에서 며칠째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마을을 떠나지는 않았을 텐데 아마도 두 사람이 끼니를 놓고 있는 모양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어느 날 우리 할아버지가 사람을 시켜 그 집 마당에 쌀과 땔감을 갖다 놓도록 이르셨다. 나는 쌀자루와 장작을 지게에 얹어 지고 가는 아저씨의 뒤를 따라 그 집 앞까지 갔지만 그 날도 그들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마당에 지게를 내려놓은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쌀자루와 장작 단을 방문 앞에 놓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저녁부터 철 늦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눈은 밤이 깊어도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이른 아침에 둑으로 갔다.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마을은 고요하고도 아름다웠다. 지붕에도 마당에도 소복이 눈이 쌓인 둑 집을 살펴보니 회색 연기가 한 줄기 굴뚝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새벽 하늘에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면서 나는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을 이상하게 생긴 사람을 상상했다. 그런데 부엌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나오더니 빨랫줄에 아기 기저귀를 널었다. 흰 바탕에 분홍빛 꽃무늬가 선명한 저고리를 입은 여인은 여느 집 새댁과 조금도 다름없어 보였다. 나는 여인의 얼굴보다 저 고리에 더 시선이 갔다. 그러자 곧 남편으로 짐작되는 남자가 방문을 열고 급히 뛰어나와 여인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러고는 그가 빨래를 마저 널고 들어갔다. 다시 마당이 텅 비자 나는 까닭 모를 슬픔이 솟구쳐 목이 메었다. 꽃무늬 저고리 때문이었을까. 눈 쌓인 마당에서 아기 기저귀를 널던 나환자 부부의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너무나 가엾게 생각되었다. 차라리 그 여인이 누더기를 입고 있었더라면, 그 남편이 방안에서 신경질적으로 소리라도 질러댔더라면 그처럼 슬픈 마음은 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태 후 고향을 떠나 중학교에 다닐 때 나는 즐겨 시(詩)를 외우는 문학 소녀였다. 내가 제일 먼저 외운 시는 한하운(韓何雲)의 〈파랑새〉였다. 시인은 죽어서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과 푸른 들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푸른 꿈을 펼치고 싶다고 노래했다. 문둥이 시인이 오그라드는 손을 보며 뭉크러져가는 육체에 갇힌 자신을 파랑새에 빗대어 자유를 얻으려 했듯이, 그 부부는 나병으로 일그러지는 몸을 꽃무늬 저고리로 감추어 그것을 잊으려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얼굴이 더 흉해지기 전에 남편은 아내의 모습을 사진 찍어 간직하듯이 마음에 새겨 두려고 꽃무늬 저고리를 사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꽃무늬 저고리는 누구나 입어 보고 싶을 만큼 예쁜 옷이었다. 보통 사람도 흰 무명 저고리나 입던 시절, 그 예쁜 옷을 사다 준 병든 남편의 사랑이나, 그들 앞에 가로놓인 험한 앞날을 뻔히 알면서도 남편 곁을 떠나지 않았던 아내의 지순한 사랑을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도 꽃무늬 옷만 보면, 그 부부의 애절한 사랑이 새삼 아프게 떠오르곤 한다. |
아름다운 글
꽃 무늬 저고리
燕 山
2012. 6. 22. 17:10
꽃무늬 저고리
신복희 수필집中에서...